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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일을 시키면 내가 직접 손을 움직인 시간은 줄어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일한 것처럼 피곤하다. 이번 작업이 그랬다.
내가 직접 코드를 길게 작성한 것은 아니다. 대신 무엇을 만들지 설명하고, 결과를 보고, 쓸 수 없는 부분을 멈추게 하고, 다시 방향을 잡았다. AI가 작업을 많이 했다는 말과 내가 편해졌다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니었다.
AI가 완성했다는데, 나는 쓸 수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여러 기능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5개 트랙의 프로토타입을 받았다. 형식만 보면 무언가 많이 진행된 결과였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다음 작업에 가져다 쓸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내 반응은 단순했다.
“이걸로 내가 작업이 더 수월해지거나 편해지거나 자동화 된다고 생각되지 않음.”
완성 화면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내가 어느 지점에서 선택해야 하는지, 결과를 어떻게 검토해야 하는지, 다음 작업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만든 것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다시 쓸 수 있는 수준을 기준으로 보게 했다.
이때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예쁜 결과를 고르는 일’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결과가 실제 작업을 덜어주는지, 판단할 지점을 숨기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이 화면을 다른 프로젝트에도 반복해서 쓸 수 있는지를 같이 봐야 한다.

내가 한 일은 지시보다 검수에 가까웠다
하루의 흐름을 돌아보면 나는 계속 지시만 한 것이 아니었다. 결과를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왜 아닌지 설명하고, 다시 시도할 범위를 정했다. AI가 내 말을 잘 이해했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특히 작업이 길어질수록 ‘완료’라는 말이 위험해진다. 파일이 만들어졌고 화면이 뜨면 시스템은 완료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그 결과가 미감이 있는지, 메시지가 살아 있는지, 기존 작업과 연결되는지까지 봐야 한다.
나는 양산형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 같은 형식을 복붙한 듯한 결과가 빠르게 나오는 것보다, 한 번 더 멈춰서 왜 이 장면이어야 하는지 생각한 결과가 좋다. 그래서 AI에게도 최대한 많은 것을 해달라고 하면서 동시에, 최종 감각과 디자인 판단은 내가 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감각, 디자인, 판단은 내가 하겠지만 ai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이끌어서 제시해둔다.”
이 문장이 지금 내가 원하는 협업에 가장 가깝다. AI가 내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선택지와 준비물을 만들어주는 것.
움직임은 나보다 잘 만들었는데, 재미는 없었다
모션 결과를 보면서는 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일러스트에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넣는 기술 자체는 내가 키프레임을 직접 잡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그 점은 분명히 좋았다.
그런데 보고 나서 이런 말이 나왔다.
“일러스트의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은 잘 했지 나보다. 내가 그거 키프레임 잡으면 훨씬 오래걸릴테니까 근데 그냥 재미가 없엉”
움직인다고 해서 장면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움직임에는 킥이 있어야 하고, 위트나 메시지, 때로는 반전이 있어야 한다. 기술적으로 매끄러운 장면이 감정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과 같지는 않다.

그래서 앞으로는 “움직임이 자연스러운가?”만 묻지 않으려고 한다. 이 움직임이 무엇을 말하는가? 멈춰 있는 이미지보다 어떤 정보를 더 주는가? 이 장면을 본 사람이 다음 장면을 보고 싶어 하는가? 이런 질문이 함께 있어야 한다.
반자동화는 버튼 하나가 아니다
내가 AI에게 바라는 것은 완전 자동화가 아니다.
“내가 AI한테 바라는 건 반자동화.”
자료를 모으고, 초안을 만들고, 반복적인 정리와 검사를 맡기는 것까지는 AI가 잘할 수 있다. 그러나 방향을 고르고, 결과를 버리고, 미감을 조정하는 일은 여전히 내 몫이다. 이 과정을 없애려고 하면 오히려 결과가 평평해진다.
반자동화는 사람이 사라지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이 꼭 해야 하는 판단을 남겨두는 방식에 가깝다. AI가 만든 결과를 그대로 게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확인해야 할 지점을 더 잘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이 작업에서 얻은 것
아직 이 작업이 수익으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AI를 붙였다고 해서 바로 시간이 줄거나 매출이 생긴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작업 방식의 기준은 조금 선명해졌다.
나는 결과의 개수보다 다음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작업실을 원한다.
AI가 일을 많이 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지금은 그 기준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다음 글
다음 글에서는 이런 판단을 반복해서 하기 위해 왜 AI 작업실을 로컬에 두려 했는지, 모아 둔 지식이 실제 작업으로 이어지기까지 어떤 준비가 필요했는지 정리한다.
내부링크 문구: AI 작업실을 로컬에 두려는 이유와 지식이 실제 작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