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디자이너가 됐고, 왜 AI 앞에서 흔들렸나(2)

예상 읽기 시간: 약 7분

AI가 등장하고, 갑자기 모두가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AI가 본격적으로 디자인 작업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미지를 만들고,
영상을 만들고,
기획안을 정리하고,
코드까지 작성하는 도구가 계속 나왔어요.

처음에는 신기했습니다.

제가 몇 시간 동안 만들던 이미지를
누군가는 몇 분 만에 만드는 것처럼 보였고,

배우지 않은 영역도
프롬프트 몇 줄이면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함은 금방 불안으로 바뀌었어요.

이것도 배워야 할 것 같고,
저것도 놓치면 안 될 것 같고,

어제 새로 나온 도구를 아직 써보지도 못했는데
오늘 또 다른 도구가 등장했습니다.

누군가는 벌써 AI로 수익을 냈다고 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완성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디자이너가 없어질 거라고 말했어요.

저는 계속 저장했습니다.

새로운 툴,
좋은 프롬프트,
멋진 결과물,
따라 해보고 싶은 워크플로.

정보는 계속 쌓이는데
이상하게 방향은 더 흐려졌어요.

많이 보고 있는데도
제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는 모르겠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AI를 보는데
AI를 볼수록 더 뒤처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AI를 많이 쓰는 것과 잘 쓰는 것은 달랐어요

처음에는 새로운 툴을 빨리 써보는 게
AI를 잘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서비스를 열어보고,
같은 이미지를 다른 모델에서도 만들어보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방식도 따라 해봤어요.

결과물은 전보다 빠르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디자이너라기보다 프롬프트 생성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왜 이 이미지를 만드는지보다
어떤 문장을 넣으면 그럴듯하게 나오는지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예쁜 결과는 많아졌는데
제 작업 같다는 느낌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AI가 문제라기보다
제가 AI를 사용할 기준이 없었던 거예요.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하지 않은 채
도구부터 열고 있었고,

결과가 나오면
좋다, 별로다 정도로만 판단했습니다.

왜 좋은지,
왜 제 작업과 맞지 않는지,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는
제대로 말하지 못했어요.

결국 AI는 제가 내리지 못한 결정을
대신 내려주지 않았습니다.

선택지만 더 많이 보여줬어요.


제가 원래 잘하던 방식에 AI가 붙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면서
저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AI를 잘 다루고,
코딩도 배우고,
새로운 툴이 나오면 누구보다 빨리 써보고,

디자이너로서 일하던 방식 자체를
전부 바꿔야 할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저는 원래부터 새로운 방향을 빠르게 시험하는 디자이너였어요.

회사에서도 손이 빠른 편이라
시간이 촉박한 작업이나 초기 R&D를 자주 맡았습니다.

레퍼런스를 빠르게 찾고,
텍스처와 조명을 바꿔보고,
몇 가지 스타일 프레임을 만들어 보여준 뒤
어느 방향으로 갈지 확정하는 일이 많았어요.

평소에 봐두고 쌓아둔 레퍼런스와 작업 경험을 꺼내
일단 눈에 보이는 결과로 만드는 것.

말로만 길게 논의하기보다
A안과 B안을 빠르게 만들어 비교하게 하는 게
제가 잘하던 방식이었습니다.

다만 이것도 항상 장점으로만 작동하지는 않았어요.

제 성격 자체가 급하고
생각나는 방향도 휙휙 바뀌는 편이라,

빠르게 핵심을 잡아낼 때도 있지만
작업 중간에 또 다른 이미지나 아이디어에 꽂혀
처음 잡았던 핀트에서 벗어날 때도 있었습니다.

가능성을 빨리 보는 만큼
가능성이 너무 많이 보이기도 했던 거죠.

그런데 이미지 생성 AI가 등장하고 나서는
제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떠올리던 가능성을
실제로 미리 보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새로운 방향이 생각나도
직접 모델링하고, 재질을 만들고, 조명을 잡아봐야
이게 될지 안 될지 판단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 전에
이미지로 여러 가능성을 먼저 펼쳐볼 수 있습니다.

이 방향이 정말 괜찮은지,
재질과 색의 조합이 어울리는지,
제품을 이런 환경에 놓았을 때 어떤 인상인지.

완성된 3D 작업은 아니지만
초기 스타일 프레임을 훨씬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저에게는 이게
완전히 새로운 작업법이라기보다,

원래 잘하던 빠른 R&D와 시각화 과정에
엄청나게 빠른 미리보기 기능이 생긴 느낌
에 가깝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조금 신났어요.

머릿속에서만 휙휙 바뀌던 생각을
일단 눈앞에 꺼내놓고 비교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생성 속도가 빨라진 만큼
무엇을 계속 발전시키고 무엇을 버릴지는
더 의식적으로 정해야 했습니다.

AI는 제 생각을 빠르게 보여주지만
제가 다른 가능성에 꽂히는 것까지 막아주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AI로 가능성을 충분히 펼쳐보되,

처음 해결하려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기준으로 방향을 선택했는지,
어디부터는 다른 아이디어로 새고 있는지를
중간중간 다시 확인하려고 합니다.

AI는 저를 느린 디자이너에서 빠른 디자이너로 바꾼 도구가 아니었어요.

원래 빠르게 찾고, 만들고, 비교하던 저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훨씬 일찍 보여주는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 속에서
핀트를 잃지 않고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습니다.


아직 방향을 완전히 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요즘 저는
AI를 잘 다루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보다,

제가 가진 디자인 감각과 경험을
AI와 함께 어떻게 더 잘 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3D를 오래 해왔다는 것,
재질과 빛을 세밀하게 보는 것,
하나를 집요하게 연구하는 것,

그리고 머릿속의 막연한 느낌을
실제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것.

여기에 AI가 더해졌을 때
제가 만들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찾는 중이에요.

아직 완성된 답은 없습니다.

여전히 이것저것 해보고,
가끔은 또 새로운 툴에 흔들리고,
괜히 남들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조건 빨리 따라가기보다
이 도구가 제 작업의 어느 부분에 필요한지를 먼저 보려고 한다는 것.

그리고 AI가 제 디자인을 대신하게 두기보다
제가 가진 기준을 더 분명하게 만드는 데 사용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디자이너가 되는 중입니다.

입시미술을 할 때도,
대학에서 과제를 붙잡고 있을 때도,
서울에 올라와 처음 3D 작업을 할 때도,

아마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완성된 사람이 된 적은 없고
계속 만들어보면서 다음 방향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그 과정에 AI가 함께 들어와 있을 뿐입니다.


말보다 디자인으로 보여주는 게 편했던 제가
AI를 일종의 서브자아처럼 사용하면서
어떻게 제 생각을 문장과 기준으로 남기게 됐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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